이 동네 이야기
관광지의 겉모습 너머, 지역의 일과 기억과 생활을 읽는 핏트립나우의 이야기입니다.
- 🏛️정동외국 공사관이 모이자 정동은 외교가가 되었다
- 🏛️정동이화학당은 여성에게 교실 밖의 삶을 보여주었다
- 🏛️정동정동에서는 신문과 무대도 새로운 공공공간이었다
- 📍정동중명전의 작은 방에서 외교권을 빼앗겼다
- 🏛️정동처음이라면 여기부터: 정동 100분 입문 코스
- 👑정릉동광통교 아래 돌은 왜 정릉에서 왔을까
- 🥾정릉동북한산보국문역에서 보국문은 바로 보이지 않는다
- 🏞️정릉동정릉시장은 왜 개울을 등지지 않았을까
- 🕯️조광조의 유배와 적려유허비1519년(같은 해)~1667년(현종 8). 죽음을 면했다고 안도한 순간이 무색하게, 유배지가 결국 그의 마지막 자리가 됐다
- 🎸종로도로 위에는 악기, 종묘 옆에는 금세공
- 🛤️종로말을 피하던 골목은 개발을 피하지 못했다
- 🔔종로서울의 하루를 열고 닫던 종
- 🏘️종로익선동 한옥은 양반집이 아니라 도시주택이었다
- 🖌️종로인사동은 전통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전통 업종을 지키려는 구역이다
- 🔔종로종로는 지명이기 전에 서울의 영업시간이었다
- 🕯️종로종묘는 화려하지 않아서 가장 왕실답다
- 🌙종로종소리에서 돌길까지: 종로 저녁 산책
- 🚶종로처음이라면 여기부터: 종로 100분 입문 코스
- ✊종로탑골공원에서는 두 개의 선언이 동시에 움직였다
- 📍죽녹원과 창평 슬로시티2003년(죽녹원)·2007년(창평 슬로시티). 버려질 뻔한 대나무밭과 잊혀가던 전통 과자 마을이, 2000년대 들어 나란히 새 이름을 얻었다
- 📍증도 태평염전1953년. 피난민 정착과 소금 증산을 위해 만든 염전이 산업유산이 됐다
- 🏛️증도, 슬로시티 지정2007년(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지정). 소금밭 섬이, 완도 청산도·담양 창평과 함께 아시아 최초의 '느린 도시' 타이틀을 받았다
- 🚡증도대교 개통2010년. 다리 하나가 놓이면서,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던 슬로시티가 육지에서 차로 갈 수 있는 곳이 됐다
- ⛰️지리산국립공원 화엄사분소1967년 대한민국 첫 국립공원이 된 지리산
- 🚧진관동·은평한옥마을30년 동안 아무것도 지을 수 없던 땅
- 🏚️진관동·은평한옥마을6·25로 사라졌다가 되살아난 가람
- 🏗️진관동·은평한옥마을관제 한옥마을이라는 실험이 남긴 것
- 🏘️진관동·은평한옥마을낯선 콘셉트, 팔리지 않던 한옥
- 💳진관동·은평한옥마을땅은 샀는데 대출은 안 되는 집
- 🕰️진관동·은평한옥마을사찰의 새벽과 한옥마을의 주말
- ⛩️진관동·은평한옥마을왕을 살린 승려의 은혜에서 시작된 절
- 🏯진관동·은평한옥마을인생샷 뒤에 숨은 30년의 개발 제한
- 🚩진관동·은평한옥마을절 안에 숨겨진 독립의 증거
- 🚶진관동·은평한옥마을진관사에서 은평역사한옥박물관까지, 완전한 반나절 코스
- 🏛️진남관1591~1599년. 이순신이 전쟁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자리에, 국내 최대 단층 목조건물이 섰다
- 🌳진포해양테마공원1380년. 유럽보다 200년 빠른, 세계 최초의 함포해전
- 🚪창신동기록 공간이 닫힌 뒤 무엇을 볼 것인가
- 🗺️창신동동대문에서 채석장까지, 완전한 반나절 코스
- 🧵창신동동대문에서 팔리는 옷은 이 언덕에서 시작된다
- ⚖️창신동보존이라는 말과 계속 일할 권리
- 🍚창신동봉제 골목의 빠른 밥과 늦은 밤
- 🌆창신동아래의 동대문과 위의 봉제마을
- 🛵창신동원단을 실은 오토바이가 골목을 오르는 이유
- 🪨창신동절벽이 남긴 서울의 단면
- ⛰️창신동채석장이 집이 되고 봉제마을이 되기까지
- 🪡창신동한 벌의 옷을 나누어 만드는 사람들
- ⛰️채계산 출렁다리2020년 두 산줄기를 이은 270m 다리
- 🏛️채만식문학관1937년, 1948년. 수탈을 고발한 소설가가, 훗날 자신의 부역을 직접 고백했다
- 📍채석강억겁의 지질 시간이 새긴 절벽
- 🚡천사대교 개통2019년 4월 4일. 지역 브랜드 ‘1004섬’이 다리 이름에 담겼다
- 🛠️청계천·광장시장‘탱크도 만든다’는 골목은 작은 공정들의 협업으로 움직였다 — 청계천 기계공구상가
- 🌿청계천·광장시장2005년 돌아온 청계천은 옛 하천을 그대로 되살린 것이 아니다 — 청계천 복원
- 🏪청계천·광장시장광장시장은 처음부터 먹거리 관광지가 아니었다 — 근대 상설시장의 탄생
- 🧵청계천·광장시장광장시장의 중심은 오랫동안 포목과 혼수였다 — 원단·한복 상권
- 🌉청계천·광장시장돌다리는 물을 건너는 시설이자 도성의 권력 지도였다 — 광통교와 수표교
- 🌙청계천·광장시장물가의 밤과 시장의 마감은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— 청계천·광장시장 저녁 산책
- 🛣️청계천·광장시장물길 위의 도로는 판자촌을 지우고 산업화의 속도를 올렸다 — 복개와 청계고가
- 🥞청계천·광장시장빈대떡과 구제옷은 오래된 시장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 — 먹거리·구제시장과 관광화
- 🧭청계천·광장시장처음이라면 여기부터: 청계천·광장시장 120분 입문 코스 — 돌다리에서 포목시장까지
- 💧청계천·광장시장청계천은 원래부터 맑은 산책용 하천이 아니었다 — 조선의 개천 관리